사근행궁터
사근행궁(肆覲站行宮)터는 고천동사무소와 그 주변 지역를 포함한 271-2번지 일대에 위치한다. 1789년(정조 13) 양주 배봉산에서 수원 화산으로 사도세자의 묘를 이장하던 정조 일행이 시흥로를 따라 남행하다가 이곳에 이르렀을 때, 정조는 1760년(영조 36) 사도세자가 온양 온천에 행차하면서 잠시 쉬어간 일을 기념하여 당시 마중나왔던 부로(父老)들에게 경기감사(京畿監司)로 하여금 쌀을 나눠 주게 하고, 행궁을 지으니 명칭을 ‘사근참행궁’이라고 하였다. 사근참은 원래 이름이 사근천(沙斤川, 사그내)이었으나 이때 한자 이름을 개명(改名) 하였다. 사근참은 정조가 과천을 통해 화성을 갈 때에도 거치던 곳으로, 시흥로와 과천로가 만나는 지점이다.
이후 정조는 화성(華城)과 현륭원(顯隆園)에 행차할 때 마다 사근행궁을 들렀는데, 특히 1795년(정조 19)의 2월 10일 행차에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함께 하였다. 이때 정조는 먼저 사근참행궁에 도착하여 시설을 살펴보고 혜경궁의 가마가 도착하자 직접 맞아들였다. 그리고 오전 간식인 주다소반과(晝茶小盤果)와 주수라(晝水剌, 점심)를 들었다. 혜경궁의 주다소반과는 16그릇의 음식과 10개의 상화(床花)로 마련되었고, 주수라는 13그릇에 음식이 담겨 있었다. 정조는 주다소반과를 들지 않고, 7그릇만의 주수라를 들었다. 이 음식들을 준비하기 위해서 행궁 북쪽의 고사(庫舍)를 보수하여 임시로 5칸짜리 수라간을 짓고, 수행원들의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또 5칸짜리 공궤가가(供饋假家)를 세웠다.
또한 가후금군(駕後禁軍)과 가전별초(駕前別抄) 등의 군병은 동구(洞口)에서 좌우로 나누어 편한 대로 휴식을 취하고, 선구금군(先驅禁軍)과 난후금군(攔後禁軍) 등은 길 위에 앉은 채로 쉬었다. 그런데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정조는 새로 지은 사근참행궁이 ‘방사(房舍)가 낮아서 밤을 지내는데 어려움이 있다’하여 비를 무릅쓰고 화성행궁을 향해 출발하였다. 사근참의 일을 주관하던 당상(堂上)은 경기도관찰사 서유방(徐有防, 1741~ 1798)과 장교 성봉문(成鳳文)이 맡았고, 낭청은 이로수(李潞秀)와 장교 송대운(宋大運)이 담당하였다.
정조는 화성 행차를 마치고 2월 15일 한양으로 올라가다가 점심 무렵에 사근참 행궁에 도착하였다. 혜경궁 보다 먼저 도착하여 각무 차사원(差使員)과 광주부윤 서미수(徐美修)·시흥현령 홍경후(洪景厚)·과천현감 김이유(金履裕)를 입시(入侍)케 하여 각 고을의 민폐(民弊)를 물었다. 조금 후에 혜경궁 가마가 도착하자 직접 맞이하고 오선(午膳)을 드신후 시흥행궁을 향해 출발하였다.109)
이후 사근참행궁은 사근평행궁(肆覲坪行宮)·사근참주필소(肆覲站駐蹕所)·사천행궁(沙川行宮)·사근천행궁(沙斤川行宮)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웠으며, 행궁 대문의 정면에는 ‘주필행궁(駐蹕行宮)’이라는 편액(扁額)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현재 사근참행궁 터에는 1989년 백운회(白雲會)에서 정조의 효행을 후세에 기리기 위해서 세운 기념비만 쓸쓸히 서 있을 뿐, 관련 유적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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