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대 대통령선거
1967년 2월 2일 공화당은 전당대회를 개최하여 당총재이자 대통령인 박정희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하였다. 야당은 1966년 말부터 대통령 후보 단일화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1967년 2월 7일 신민당이 출범하였고, 민중당과 신한당도 통합 전당대회를 개최하여 신민당의 대통령 후보에 윤보선을 추대했다. 군소 정당에서는 대중당의 서민호, 민중당의 김준연, 한독당의 전진한, 정의당의 이세진 등이 출마하였다. 이세진은 정권 교체의 목소리가 높은 현실을 감안하여 후보직을 사퇴하였다. 제6대 대통령선거는 1967년 5월 3일 실시되었으며, 당시 의왕지역은 시흥군에 소속되어 있었다.
당시 전국 투표율은 83.6%, 경기도는 84.7%, 그리고 시흥군은 83.1%를 기록했다. 선거 결과 민주공화당의 박정희가 당선되었다. 전국 득표에서 박정희가 51.4%, 윤보선이 40.9%를 획득했다. 그러나 시흥군에서는 박정희 39.4%, 윤보선 54.0%로 윤보선이 압도적이었다.
민주공화당은 1971년 3월 17일 전당대회를 개최하여 박정희를 다시 제7대 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한편 야당은 40대의 소장 정치인들이 대권주자로 나서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다. 신민당 후보 지명전에서 ‘40대 기수론’을 내걸고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이 경쟁했다. 1970년 9월 29일 김대중은 신민당 대통령 후보지명대회에서 후보로 지명되었다. 1971년 1월 6일에는 국민당이 창당되어 윤보선을 후보로 지명하였지만 고사하였다. 선거에는 박정희, 김대중, 국민당의 박기출, 자민당의 이종윤과 정의당의 진복기가 출마하였다.
제7대 대통령선거는 1971년 4월 27일 실시되었으며, 의왕지역은 시흥군에 소속되어 있었다. 전국 투표율은 79.8%로 낮았으며, 경기도는 81.1%였음에 반해 의왕지역은 그보다 낮은 79.4%를 기록했다. 선거 결과 민주공화당의 박정희가 당선되었다. 박정희는 총유효투표의 53.2%를 획득하여 45.3%의 득표율을 보인 김대중을 누르고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의왕개표구에서는 박정희와 김대중의 득표율이 48.0%와 49.9%로 김대중이 약 2% 높았다. 경기도와 의왕개표구에서는 김대중의 지지가 약간 높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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