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
1910년  한장석, 문간(文簡)으로 시호 개명
1911년  일제가 30본사제도를 제정하여 청계사를 봉은사 말사에 편입시킴
1912년  김경흔(金敬欣), 백운사 초대주지 취임
 4월5일의왕시 토지조사 대상은 학의·포일·내손·청계·오전·이리·왕곡·삼리·고천 등 9개 리. 오전리에서 토지조사 시작
 6월7일포일리를 끝으로 토지조사 완료. 총 62일 소요
1913년2월1일수원군 의곡면 청계동 산업계 창립(위치 : 광주군 의곡면)
 5월1일수원군 의곡면 의일외동 산업계 창립(위치 : 광주군 의곡면)
1914년1월16일광주군 의곡면 광고산에서 의곡면과 과천군 상서·하서면에 사는 노인들 간에 시장(柴場) 분쟁(『매일신보』, 1914. 1. 16)
 3월1일부령111호에 따라 광주군 의곡면과 왕륜면을 합하여 의왕면(儀旺面)이라 칭하고 수원군에 이속
 6월1일수원군 의왕면 농사개량조합 창립(위치 : 의왕면 고천리)
 7월1일수원군 의왕면 축우개량조합 창립(위치 : 의왕면 고천리)
 8월27일조선총독부가 수원경찰서를 경기도 경무부 소속으로 결정
 12월31일수원금융조합의 구역을 수원군의 수원면·일형면·태장면·안용면·매송면·봉담면·정남면·향남면·양감면·성호면·동탄면·의왕면·반월면과 용인군의 수지면·기흥면으로 결정
1915년2월13일수원군 면내 명칭 및 동리 구역 개편(『조선총독부관보』)
 4월1일수원축산조합 조직
 8월23일수원군 등지의 조선총독부 등기령을 9월 1일부터 시행키로 결정
    
1916년  주지 김경흔이 백운사 중수(重修)
   이원근 사망
1917년9월21일수원군 토지조사 착수. 현지 조사기간은 1918년 2~6월
1919년3월31일수원군 의왕면 고천리에서는 밤에 다수의 군중이 모여 면사무소와 경관주재소에 대하여 폭행을 하자 수원주둔병대가 출동하여 해산시켰는데, 주모자로 인정할만한 자 41명을 체포하였다가 그 이튿날 태형에 처하고 방면(『매일신보』, 1919. 4. 5)
   의왕면 고천에서 군중들이 만세시위와 횃불시위를 벌이고 면사무소와 주재소를 급습
 11월6일배재고등보통학교 4학년 재학 중 서울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했다가 경찰에 체포된 의왕면 청계리 출신의 성주복에게 징역 6개월,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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