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1935년  임영대군 사패지를 222인의 공동명의로 등기
 1월19일정완명 주지, 청계사 주지 재취임
 3월1일수원군 빈궁민 7,274호(3만 3,574명)로 전체 군민의 30%라고 발표
 5월1일수원읍 의원선거에서 한국인 7명과 일본인 5명 당선
 7월13일의왕면은 수원읍에서 3리 이상을 격하여 있는 산간벽지의 면으로 800여 호에 5,000인구가 거주하고 있는바 현재 학령 아동이 574명이나 된다고 함. 그 학령 아동 중에서 시흥군 남면 군포장공립보통학교로 통학하는 아동이 88명, 동군 과천공립보통학교에 43명, 동면 성현서당에 68명, 합계 198명이 수용되어 있으나 나머지 376명의 학령아동은 노상에서 방황하고 있으므로 이것을 유감으로 생각하고, 의왕면 유지 50여 명이 면사무소에 모여 공립보통학교설치기성회를 조직함. 회장 류근보, 부회장 정기진, 감사 이승규·류근순, 간사 각 진흥회장(『조선중앙일보』·『동아일보』, 1935. 7. 21)
 10월1일수원군 일왕면에서는 보통학교기성회를 조직하고 각 리진흥회에서 기부금모집에 대활약하고 있는바 면민 1차로 벌써 기부금액이 2,100원에 달하였다는데 면장 류근우 말에 의하면 명년 9월경에는 기필코 개교할 예정이라고 함(『조선중앙일보』)
1936년  고금산, 경일암 주지 취임
 10월1일일형면과 의왕면 합하여 수원군 일왕면(日旺面)으로 개칭
 10월30일고천공립보통학교 설립 인가
 12월1일고천공립보통학교 개교. 츠네후카타케오(常梁武夫), 초대교장으로 부임
1937년  오전리교회 창립
 6월10일류근풍의 집 객실에서 예배소를 설치하고 15~20명의 남녀신도가 이곳으로 출석. 이때 류춘희가 이 예배를 인도하여 본 교회인 수원읍성결교회의 한보순 목사가 예배를 도움
 9월25일월암리 치성통문 작성하여 발문함
 10월 오전동 등칙골 산신제. 이승면의 집을 비롯해 42호가 참가
1938년  경일암 글방 3칸 중건하고, 법당 및 도량, 축대 축조
   오전리 신교회당 설립을 만장일치로 가결하고 교회당 건립에 착수. 류창희와 며느리 홍길순의 헌신으로 가능. 류창희, 헌금 100원 기부. 마루·종시계를 갖춘 교회 완성
   서견 묘 내손동으로 천묘. 가을에 김노·김희수의 묘와 함께 광곡으로 옮기게 되었다고 함
 3월1일제1회 고천공립보통학교 졸업식
 4월1일조선교육령의 개정에 따라 고천공립보통학교가 고천공립심상소학교로 교명 변경. 수업연한 6년으로 변경
 4월25일동양선교회 오전리성결교회 설립(『조선총독부관보』, 1938. 6. 1)
 6월28일만주사변 1주년 기념을 기점으로 12~40세까지 근로보국대로 총동원. 목표 60개로와 시행요강 발표(『매일신보』)
 11월28일수원군내 초등교에 15학급증설로 내년봄 입학난 해소시도. 고천학교도 포함(『매일신보』)
1939년3월 화성군 일왕면 삼리 470번지에 부곡양조장에서 탁주 제조. 사장 최신식
 3월24일각 읍면과 진흥회 지도기관이 상호 연계하여 농가부채 정리에 노력(『매일신보』)
 4월 오전리교회 수원읍성결교회 지교회에서 발전하여 완전히 자립적 독립교회로 교세 성장
 6월5일오전리교회 헌당식 거행
 7월1일이무영, 동아일보사 사직하고 의왕시 이동 궁말로 낙향. 「제1장 제1과」, 「궁촌기」, 「먼동이 틀때」, 「명일의 보도」, 「흙의 노예」 등을 발표하면서 창작생활에 전념


발간사·편찬사·축사  l  의왕시 안내  l  편찬위원회 소개  l  관리자 메뉴
Copyright ⓒ 의왕시·의왕문화원 All Rights Reserved.